미래지향형 한일관계의 정립(鼎立)을 위하여 게시글 상세보기
미래지향형 한일관계의 정립(鼎立)을 위하여

방** 2017.02.23 조회수 : 354

미래지향형 한일관계의 정립(鼎立)을 위하여

1.한일간의 관점의 차이

한국과 일본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주장부터 정리해 본다.
1)1963년 한일회담에 의하여 일본은 한국과의 포괄적 보상을 끝냈다.
2)독도(獨島, 일본은 竹島)는 일본 영토이다. 일본열도 주변의 무인도는 모두 일본영토이다.
3)일본군위안부문제는 2015년12월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협의'가 완료되었다.

한국의 주장을 정리해 본다.
4)한반도는 청일전쟁(1894년)부터 일본이 패전하는 1945년까지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5)한일협정에 의하여 1910년 체결된 한일간의 합병은 무효화하고(동 제2조), 한일회담은 이 기간에 대한 배상이다.
6)한일합병(1910년)까지 16년간 한반도 침략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2. 위의 1)과 5)의 한일회담에 대하여 언급해 보자

양국은 외교적으로 포괄적인 협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포괄적이라는 범위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포괄적 합의를 하였다고 하나 미처 알지 못한 중대한 후유증이 발생했다면 추가청구하는 것이 현대의 관행이기도 하다.

제2차 대전 이후, 일본이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자 무조건 항복하고, 미국의 의도대로 현재의 헌법과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이 피점령국은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조선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일본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대가를 치른 것 뿐이다.

그리고, 일본은 그 헌 법 아래에서 70년 동안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고 붕괴될 때까지 외부와는 전쟁을 모르는 나라였다.

3.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의 허구성

위의 2)독도(獨島, 일본은 竹島)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있는가?
독도는 6세기 초부터 신라의 영토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에 대한 고증적 사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일본 부근에 있는 무인도라고 하여 모두 일본의 영토가 될 수는 없다.

1945년,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며, 영토문제에 대해서 언급되었다. 1947년3월19일판에는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 독도(竹島)를 포기하고, 북방 4개 섬에 대해서도 소련에 할양했다. 그러나, 소련이 승전국으로서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무효를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한국도 서명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한국은 러시아와는 전혀 사정이 다른 빼앗겼던 영토이었다. 한국에는 할양이 아닌 원상회복이므로 서명은 필요 없었다. 아쉽게도 한국은 전승국이 아니라 서명식에도 참가할 수도 없었다.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부터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일왕제도의 존속여부, 제1차 대전부터 일본이 점령한 지역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일본은 카이로회담⇒얄타회담⇒포츠담선언⇒모스크바회의⇒샌프란시스코조약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승하여 무조건 수용하기로 하였다. 일본이 조선을 압박하여 무조건 굴복시키듯이 모두 굴복한 것 아닌가?

일본은 북방 4개 섬을 패전으로 인하여 소련의 점령을 용인하지 않았는가? 소련은 홍콩이나 마카오처럼 100년간 조차(租借)한 것도 아니다. 오늘에 와서는 러시아에게 북방 4개 섬을 반환해 달라고 하고 있다. 한편,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섬을 제국주의 시절 점령하고, 패전 후, 미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1972년에는 일본으로 귀속시켰다. 그러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것은 한국에 대한 주권침해에 해당된다.

4. 단순한 합의문 발표?

위의 3)일본군위안부문제는 2015년12월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협의'가 완료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양 국가가 합의하였으므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양국이 밝힌 합의 내용에는 추상적인 문장뿐이다. 이면합의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만일 이면합의가 있다면 근본적으로 2015년12월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협의'는 양 국민을 속인, 주권의 주체인 국민을 속인 행위이므로 무효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국민주권주의 국가의 기본취지에 해당된다. 과거처럼 통치행위라고 하는 것은 이제 제국주의 또는 독재주의와 함께 사라진 제도이다.

5. 평화의 소녀상이란 무엇인가?

종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이하는 시점에 시민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소녀가 의자에 앉은 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상의 이름은 평화의 소녀상으로 지었으며, 종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때를 재현했다고 한다.

1992년1월8일부터 2011년12월14일까지 1,000회를 맞이하면서,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공감해 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파악된 것은, 국내에 58곳, 국외에 35곳, 소형으로 11개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겠다고 한다. 원 포인트(One Point)로 마감하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최초로 세운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종군위안부 동상 이외의 모든 것들은 (가칭)종군 위안부 기념관에 보존하고,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록 등을 보존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방방곡곡에 세운다면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만일, 하나만 더 세운다면 조선의 무능에 항의하기 위하여 경복궁 앞에 세워야 하지 않을까?

6. 일본은 만주사변(1931년)과 2차 대전(1939-45년)을 반성해야 한다

일왕은, 만주사변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반성하는 대가로 권한 없는 왕으로 남기로 했다. 먼저 국제약속을 이행하여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조약에 서명한 이상 국제조약을 지켜야 한다.

일본은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에게 무조건 강압당했다고 우익들이 외치고 있으나, 일본은 전범국가였다. 따라서 패전한 이상, 모든 것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전쟁배상의 원칙이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을 침략하지도 않았으나 일본의 침략에 유린당했다. 모든 것을 말살 당하여 기록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 결과, 전쟁 배상의 원칙에서도 2차 대전(1939-45년) 기간에 해당하는 대일청구권을 당시의 한국 군사혁명가들과 체결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 개인도 2차 대전 이전의 청구권에 대해서는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일본은 만주사변(1931년)에서부터 2차 대전(1939-45년)까지의 조선을 유린한 데 대하여 반성의 표시를 정중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한일관계의 출발점이므로 우선 시행해야 한다.

7. 조선(한반도) 침략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05년)의 전장(戰場)은 조선이었다. 모두 일본이 승리했다. 이후, 1차 한일협약(1904년)과 2차 한일협약(1905년)을 거쳐서 조선은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의 조선침략은 오랜 기간 행하여졌으며, 많은 것을 수탈당했다고 본다. 많은 유형문화재도 포함된다.

한일협정(1963년)에서, 한국과 일본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면서 포괄적인 보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유형문화재는 한 국가의 정신적 유산이므로 조건 없이 일본국가가 반환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포괄적인 배상금으로 가치평가를 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의하여 한국의 재산을 반환해야 한다(동 제2조)' 내용에 의한 것이다.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해결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한일간의 협정(1965년)의 제1조에서, 일본은 3억 달러에 해당하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장기저리 차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국민들은 일본이 무상으로 3억 달러를 제공했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으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약탈해간 모든 재산과 한반도를 점령하고 사용한 토지사용료와 위자료를 생각한다면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나 양국간 합의한 사항이므로 존중하고자 한다. 일본에서는 무작정 포괄적으로 무상 제공했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

이상은 단순한 36년간의 보상에 해당한다. 청일전쟁(1894년)부터 한일합병(1910년)까지 16년간 한반도 침략과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수행했다. 이 부분에 대한 보상과 문화재 등의 반환은 생략되어 있다.

8. 종군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2015년)

위의 1의 3)의 합의문을 재 검토해 보자.
일본 외상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로 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주었으며, 이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2)일본정부는 위안부문제를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모든 위안부상처 치료를 강구한다. 한국정부가 위안부지원을 위한 재단 설립에 일본정부의 예산을 일괄 출연하여 위안부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 사업을 한다.
3)이 문제가 최종적인 해결이다.

일본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한다. 양국간의 합의에 대해서는 이견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을 한 정부와 관계자들에 대한 국내적인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 또는 정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2020년 올림픽을 유치하고는 경기장 등을 비용문제로 인하여 조정하고 있지 않은가? 올림픽을 유치할 때에는 이렇게 투자하고 멋진 경기장을 도심 중앙에 건설한다고 제시한 후,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후일, 비용을 문제 삼으며, 분산 개최를 협상하자, IOC위원장이 약속위반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IOC위원장에 의하여 일본정부, 일본IOC위원장, 도쿄시장, 그리고 IOC 대표 등 4자가 참가하는 2020 올림픽준비위를 만들지 않았는가?

한편, 한국 외무부장관의 발표를 보면,
1)일본정부의 출연을 전제로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의 조치에 협력한다.
2)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은 공관의 질서와 위엄의 관점에서 일본의 우려함을 인식하고, 한국정부에서도 관련단체와 협의를 하는 등, 적절한 해결을 위하여 노력한다.
3)일본정부의 조치가 실시되면, 유엔 증 국제사회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 상호 비난하는 것을 피한다.

위의 발표문을 보면 10억 엔을 받으면 위안부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은 모두 일본에 팔아 넘긴다는 이야기와 무엇인 다른가? 물론 국제적인 약속을 지켜야 하나, 국민이 의사에 반하는 정부의 결정은 내부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강하게 추궁하지 못하는 야당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야당들의 목적 이외에는 무관심 이란 말인가?

9. 일본의 과거사 사과(?)에 대하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은 1592년부터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약탈을 당했다. 일본의 무신들이 조선을 침략했으며, 일왕은 평화주의자라고 평화의 가면으로 위장하고 불리한 국면에서는 내각의 그림자로 숨고 있다. 일본은 8세기부터 지금까지 125대 왕임을 자랑하고 있다. 초기에는 다소 신화적이나, 1900년대 초부터 일왕을 '천황'라고 정착시켰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로 들어가는 수순(?) 중이었으며, 일본은 전쟁을 통하여 '천황'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사과의 정점은 일왕이 아닌가? 일본은, 이것이 일본의 진정한 사과의 표시가 아니고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게도 묻고자 한다. 러시아(소련), 북한, 중국과 교류하면서 6.25 한국전쟁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또한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었는가? 일본에게는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가? 피해의 정도로 치면 한국전쟁도 일제 식민지에 버금갈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지 말자. 사과를 하고 말고는 일본의 국격(国格)의 수준일 것이다. 선비의 나라 한국에서 옹졸한 생각은 버리고 미래를 생각하자.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과 수교를 하고 왕래를 하나 유동성이 크다. 북한과는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의 지배계층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유사시, 러시아-중국-북한은 어제든지 연합할 수 있는 세력이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은 다시 제국주의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경우, 한국은 일본마저 적국으로 만든다면 사면초가이다. 이러한 경우의 수에서 한국의 생존은 가능할까? 그래서 러시아-중국-북한 그룹으로 들어가자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절반 이상의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침략행위는 괘씸하지만 동아시아의 교두보 확보를 위하여 유화 제스쳐를 보내고 있으며, 일본 또한 생존을 위한 선택으로 미국의 제1중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0.한일SWAP의 필요성

일본이 한일 SWAP(중앙은행간 통화교환협정)을 맺지 않겠다는 것이다. IMF 이후 130억 달러 규모에서 2011년 700억 달러로 상향조정한 바 있다. 한일 SWAP는 2012년 종료되었으며, 2015년 한국의 전경련은 한일 SWAP의 재개를 요청했다. 부패한 조직에서 비상구로 이용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으나, 필자는 이러한 경제외교는 반대한다.

달러가 필요해도 일본에게는 빌리러 가지도 말아야 한다. 이러한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는 철저하게 반칙행위를 감시해야 한다. 그러라고 국민이 국가에게 호루라기(권력)를 위임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한결같이 부정과 부패로 막을 내렸다. 한국의 지배계층만 청빈선언을 해도 한일 SWAP는 필요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은 무정부상태와 같다. 일본이 여기에 경제 기습공격을 한다는 것은 우방 국가가 할 짓은 아니다. 한국은 일본에게 우스운 상대라는 인식이 배어있는 것 같다. 한일 SWAP는 중앙은행간 통화교환협정이 아니라 한국의 유사시에 한국에게 달러를 빌려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협정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를 배척해야 할 것이다.

11. 비엔나조약 위반?

1)평화의 소녀상은 비엔나조약 위반이라고 일본은 협박하고 있다. 일본이 먼저 국제질서를 준수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항을 준수해야 한다.

2)1894년 청일전쟁부터 시작하여 조선을 침략한 이래 1945년 패전으로 한반도에서 축출되기 까지 문화재는 물론 온갖 약탈과 만행을 저지르니 않았는가? 42년이라는 시간이었다.

3)일본은 상기 1)과 2)를 성실하게 준수하고 난 후, 일왕이 과거 대전(大戰)을 반성하고 상징적 일왕으로 남기로 한 이상, 과거 한반도 침해와 손괴에 대한 사과가 전제 되어야 한다. 필리핀 등에 가서는 사죄하지 않았는가? 한국은 필리핀보다 더 오랜 기간 그리고 더 큰 피해를 입은 국가이다.

4)그 다음에 비엔나 조약을 거론해야 한다. 국제법과 질서를 지키는 품격을 갖춘 후 비엔나 조약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지 않겠나.

참고: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조약(Vienna Convention on Diplomatic Relation) 제22조2항

Article 22
2. The receiving state is under a special duty to take all appropriate steps to protect the premises of the against any intrusion or damage and to prevent any disturbance of the peace of the mission or impairment of its dignity.
수신국은 침범 또는 위험에 대하여 사절단의 공관을 보호하고, 공관의 치안의 방해 또는 공관의 품위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다.
接受国は、侵入又は損壊に対し使節団の公館を保護するため及び公館の安寧の妨害又は公館の威厳の侵害を防止するため適当なすべての措置を執る特別の責務を有する。

12. 약속은 순차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2015년 12월 한일 양국간 종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하였으며, 한국정부도 위안부소녀상을 이전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10억달러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은 1963년 이후 한일 청구권은 포괄적 협상이라고 하면서 10억 원을 추가 지불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일본은 1910년 이전의 조선침략에 대한 배상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으나. 시기가 모호하다.

한편, 일본과 냉소적인 관계를 만든 박근혜 정부가 한 순간에 10억 엔을 받는 행위도, 여성으로서 위안부문제를 이렇게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다. 국가간의 약속이므로 위안부 문제는 더 이상 외부로 발설하지 말아야 하겠으나, 10억 엔은 종군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2015년)의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즉각 거절해야 한다.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국민의 불쾌감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나머지 약속은 수차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우선 일본이 성실하게 앞선 약속을 지켜야 한다. 수순(手順)을 밟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제2차 대전과 관련한 일련의 조치를 취한 다음 한국에 약속이행을 요구해라. 또한 종군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일 합의(2015년) 이전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은 기득권(우선권)을 가지는 상징물이다. 이후는 일단 이전, 제거해야 할 것이다.

13. (가칭) 20세기 한국평화기념관을 설립하자

종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하여 일제하의 기록과 증거물을 보관하는 '(가칭) 20세기 한국평화기념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여기에 주한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이외의 기념물을 모두 이곳에 보관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삼천리 방방곡곡 사거리마다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11년12월14일까지 1,000회를 맞이하면서, 기념비적인 상징을 지닌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을 원 포인트로 강조하자. 이것이 전략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대한 기록을 후세의 교훈으로 남기자. 이것이 (가칭) 20세기 한국평화기념관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긴 역사의 바퀴에서 생각한다면 어느 한 순간일 것이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서부터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한국은 다시 태어났다. 북한과 중국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들 나라를 이해하는 만큼 일본도 이해를 해야 한다. 지금부터 일본과는 미래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해 주자. 마치 미일관계처럼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100년 커뮤니언
band: band.us/@100next
PC: café.naver.com/100nextkorea

자료관리 담당자

홍보담당관
 (051-888-8384)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