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도서관 재건축 불가판정 시의회에 찬사를!! 게시글 상세보기
부전도서관 재건축 불가판정 시의회에 찬사를!!

박** 2014.01.04 조회수 : 597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그 중에서 '추억'이라는 과거에 대한 기억 또한 윤택한 삶을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과거의 기억 떠올리며 현재를 재편하고 미래를 준비하는것이 우리의 삶이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현실을 견뎌내고, 추억을 매개로 아름다운 관계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적 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유물이 단지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래된 것'을 낡은 것, 하찮은 것, 지저분한 것,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기 일쑤다.
과거를 보존하는 일은 우리의 영혼을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다.
'현대화''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과거의 기억들을 싸그리 없애버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황폐화된데는 과거의 기억을 스스로 없애어온 탓이 크다.
가난을 극복하고자한 '잘 살아보세'의 오도된 근대화가 '빨리빨리' 문화를 만들었고,
과거의 것을 무조건 낡은 것, 진부한 것, 열등한 것으로 업신여겨왔다.
우리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스스로 비하하며 효율성을 추구해 왔다.
우리의 삶이 피폐화되고 이기적으로 변한 이유도 인문이 부재에 있다.
한 도시의 인문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인문의 출발점인 도서관을
도시개발과 효율성의 연계선상에서 진행하는 일은 인문적 행위가 아니다.
세계의 어느 나라, 어느 도시가 도서관을 상업공간의 틈새에 끼워넣는단 말인가.
문화가 있는 도시에 예외없이 존재하는 박물관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의 저장고이며, 영혼을 간직하는 곳이다.
한 도시내에 존재하고 많은 이들의 추억이 깃든 오래된 건물은
도시와 시민들의 소중한 유물이며, 현장의 박물관이다.
이를 부수어 현대식 건물을 새로이 짓는 일은 우리의 기억을 부수고, 영혼을 없애는 일이다.

물론 도시의 모든 건물들을 오래되었다하여 모두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할 수는 없다.
낡은 것을 현대화하고, 편리하게 재창조하는 일 또한 도시재창조에 있어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남겨둘 것은 남겨두어야 한다. 그 기준은 바로 '공공의 기억'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도시의 유물, 건축물은 가급적 보존되어야 한다.
거기엔 도시의 Story가 담겨있고, 추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도시는 공공의 기억이 함축되고 추억이 깃든 건물을 함부로 부수지 않는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오래된 기차역사로 만들었고,
독일 뒤스브르쿠의 한 제철소는 암벽등반코스까지 갖춘 공원이 되었다.
품격있는 도시는 문화와 역사가 깃든 건축물을 예외없이 잘 보존하거나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부전도서관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고, 부산시민의 기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일요일 새벽이면 해도 뜨기전에 새벽잠 설쳐가면서 줄을써서 단돈 50원에 하루종일 시험공부를 했던 곳이다.
등나무 그늘에서의 낮잠 기억, 식당에서 팔던 50원짜리 '시락국'에 도시락 말아먹던 기억,
공부하러가서 침 흘리며 잠만 잤던 추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단돈 100원으로 하루종일 공부하란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할 수 있었던 내 어린시절의 소중한 기억이며 추억이다.
비록 밥벌이로 부산을 잠시 떠나있지만,
내가 늘 부산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듯한 빌딩과 첨단 시설은 부산보다 뉴욕이나 서울이 더 났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듯
도시에 대한 기억의 공간이 없다면 도시에 대한 사랑도 깃들 수 없다.
우리는 고향에 가면 어김없이 어릴 때 뛰어놀던 곳부터 찾는다. 그게 사람이고 인지상정이다.
그런 기억과 기억의 장소가 없다면 고향에 가서 어떻게 추억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 할까.
시민들의 소통도 기억을 통해 형성 된다. 소통의 근본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인데,
공공이 함께 떠올릴 기억과 추억의 공간이 없다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까.
문화는 기억을 통해 습득하고, 전파되고, 공유한다.
Story와 추억이 사라진 번지르르한 새건물, 최첨단 건물을 두고 문화라 하지않는다.
기억이 배제되고 실용성만 강조된 건물들속에서 문화가 자라지 않는다.
공공이 함께 기억하고, 공유되는 도시의 상징들이 살아있어야 도시 문화도 형성된다.
도시란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면서 생긴 문화와 역사의 공간이다.
오래된 건물을 낡은 것이라하여 다 부수고 새로 지어왔다면 로마의 콜롯세움도,
서울의 경복궁도 다 부수었어야 했다. 이는 역사와 문화의 단절이다.
우리가 4대강을 비판하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강과 강변에 깃들어 있는
사람의 기억과 추억을 모조리 불도저로 밀어 버렸기 때문이다.
남겨두어야 할 곳을 남겨둘 때, 넘지않아야 할 선을 넘지 않았을 때 사람사는 세상의 질서도 유지되는 것이다.

부산영화제, 불꽃축제, 부산비엔날레....
뭐 이런 전시공연문화 같은 것들로 치장한다해서 '문화도시부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감각기관을 자극하는 예술물들의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추억들이 도심 곳곳에서 살아숨쉬고, 이 기억들을 매개로 시민들이 부산을 얘기하고,
부산을 추억하며 그 산물로서 부산을 표현할 때 '문화도시' 부산의 진정한 모습이 완성되는 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의 성공은 '과거'라는 추억속에 '그림'이라는 문화를 덧입혀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동구의 이바구길 또한 오래되고 촌스러운 곳에 'Story'를 만들어놓아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쾌적한 도시환경을 의미하는 도시 Amenity는 있어야 할 것을 있게, 그자리에 있는 것을 제자리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 훌륭한 시설을 만들었다해서 쾌적한 도시환경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효율적이고 쾌적한 공간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와 더불어 생태적, 역사적, 문화적 공간도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서 도시 Amenity가 완성되는 것이다.
오래된 도서관을 '도시의 흉물'로 바로 보는 시각은 마치 아름다운 야생초를
잡초로 바라보았던 과거의 개발식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함이다.
과거의 것을 보존한다는 것은 '존중'과 '인내'의 의미이다.
전통을 '존중'하며 '인내'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그 속에서 현재를 다듬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지혜를 찾는 것이다.
'자기다움'을 간직하는 일은 자긍심을 스스로 부여하는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과거 시간과 역사를 경험하면서 자부심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공공의 추억이 깃든 부전도서관.
부산 뿐만아니라 전국에서도 찾기힘들만큼 오래된 공공도서관의 효시.
지금 부산에 부산을 상징하고 공공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 건물이 과연 몇개나 될까...
도시의 영혼, 도시의 추억을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깡끄리 없애놓고 '문화도시'라 얘기할 수 있을까?
'부산다움'은 부산의 기억을 간직하고 상징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뜻에서 이번 부산시의회의 부전도서관 재건축 불가판정은 매우 뜻깊은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부산시의회 의원들의 결정에 찬사를 보낸다.
시의회가 있어야 할 존재의 이유를 확인시켜준 일이었다.
적어도 부산을 사랑하고 부산을 책임진다는 조그만 의지라도 있다면
앞으로도 부산의 역사와 부산다움을 보존하는 일에 원칙을 견지해주길 바라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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